고등어회를 꿈꾸다
겨울의 제주도에 기대한 것 중 하나는 고등어 회였다. 사당에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니맛내맛도 아닌 애매한 맛이었는데 제주도에서 고등어회를 먹은 사람이 별로라고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비리지 않고 신선하니 참 맛있다나? 고등어 회를 먹어보고 싶단 생각을 몇 년째 하고 있었는데, 회사에 (다른) 연구원님이 미영이네를 다녀왔다고 했고, 맛있게 먹었다고 하는 말에 유명한 곳을 미리 조사를 좀 했다.도민에게 고등어 회를 먹으러 모슬포 항에 간다고 하니까 고등어 회 땜에 그 먼 데를 왜 가냐고 하던데 알고 보니 제주도 사람들은 1시간 이상 가야 되는 거리는 거의 서울에서 부산 가는 느낌으로 생각하더라. 갑자기 부산 가서 파전 먹고 오겠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이긴 하겠다. 아무튼 미영이네는 수요일 휴일이라는 정보를 미리 알고, 화요일에 가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당일에 일어나니 아침 8시였다. 모슬포항에 가려면 서귀동에서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일찍 일어난 나 자신을 칭찬했으나 어김없이 다시 잠든 나는 열시가 다 되어서 깨어났다.. 서둘러 정거장에 갔지만 배차 시간이 지옥이었다. 60분이 넘게 걸리는 것도 있고.. 제주도 버스는 너무나 빡세 디 빡셌고 택시비도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도민들은 모두 차 한 대씩은 있는 걸까?
여기서 잠깐 사족을 달자면, 제주도 버스는 배차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제주 버스 시스템을 이용해야만 한다. 네이버 맵을 믿었다간 배차 정보 없음에 곧 오겠지 하고 기다리다가, 다음 버스: 60분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경험담)
아무튼, 나는 결국 택시를 탔다.
택시 타고 가는 길에 기사님과 짤막한 이야기를 했는데, 나무에 귤도 아닌 수박만 한 노란 덩어리들이 매달려있는데 그게 뭐냐고 하니까 하귤이라고 대답해 주셨다. 하귤은 여름에 따먹는 귤이라는데 도민들은 시고 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고 한다
미영이네


미영이네가 있는 모슬포항은 평범했다. 각 항구마다 분위기가 좀 다른데 모슬포항은 부산하지 않고 조용했다. 조업을 쉬는 날인진 잘 모르겠지만, 뱃고동 소리도 없고 조용했다. 미영이네는 가게 리뉴얼을 해서, 주변 경관과 안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꽤 늦게 도착했는데도 웨이팅이 없었다. 하지만 입구에서 테이블 예약을 해야 한다. 메뉴까지 완전 다 정하고 입실하는 시스템이다. 점원이 나보고 뭐 먹을 거냐고 하기에 고등어회 소짜랑 구이를 먹겠다고 하니까 그거 다 먹을 수 있냐고 또 물었다. 나는 사실 뚱뚱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고등어회가 나왔다. 처음엔 좀 당황한게, 와사비 간장을 주지 않아서 이걸 어떻게 먹으라는걸까 싶었다. 둘러보니 나같은 인간들이 많은지 아예 붙여 써놨다. 혼자 머쓱해하며 똑같이 먹어봤는데 양념장 야채는 좀 매콤하다. 개인적인 취향으론 뭐 안곁들이고 쌈장에 찍어먹는게 제일 맛있었다.
고등어는 비리지도 않고 신선한것같았고, 무엇보다 쫄깃한 식감이 아주 제법이었다. 회 중에는 이런걸 먹어본적이 없다. 좀 비싸도 대만족했다. 굳이 한마디 하자면 고등어 자체에 맛은 없는것 같다. 쌈장빨인 느낌. 비유하자면 전어같은 놈이다.
한라산 한잔 걸치고 있는 와중에 고등어 구이와 탕이 나왔다


고등어 구이도 진짜 잘 구웠다. 촉촉한 것이 어떻게 이렇게 굽지 싶은 맛이다. 살도 가득가득한 게 정말 감탄해서 국내산 고등어도 충분히 노르웨이에 비벼볼 만하다고, 고등어는 구이로 먹어야 함이 옳다며 제주도 파이팅을 속으로 외치고 있다가, 원산지를 보니 구이는 노르웨이산이라고 적혀있었다. 노르웨이산 고등어 드세요..
탕은 아주 고소한 들깨탕 같은 느낌인데 맛이 좋다. 걸쭉하니 먹을때마다 술이 깨는 맛이어서 한라산 1병을 더 했다.
송악산
모슬포항에서 송악산으로 향했다. 송악산에 가게 된 계기가 있다.제주도 여행과는 아무 상관 없는 시기에 신세경 씨의 이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자막이 기억에 남았었다. 제주도에 단 하루만 올 수 있다면 송악산에 오겠다는 말이 내 뇌 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존재했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미영이네 근처에 송악산이 있단 걸 알게 되고, 나는 반드시 송악산에 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송악산에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왜 또 택시냐 하면, 배차의 지옥에 또 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선 비효율이 개 미쳤다. 배차가 정상이더라도 버스로는 41~50분이 걸리는 거리를 택시로는 단 9분 만에 갈 수 있다. 모슬포에서 송악산으로 가는 노선이 없기 때문에 한번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택시를 탔다.
이 얘기를 택시 기사님한테 했더니 송악산 부근엔 택시도 잘 없다며, 일정이 다 끝나고 택시 이동이 필요하면 전화를 주라고 말해주셨다. 나는 제주도 사람들의 친절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전화는 하지 않았다.


송악산앞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들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부터 문제였다. 해당 스타벅스엔 리유저블컵으로밖에 테이크아웃이 안된다. 리유저블 컵을 반환하면 천원을 돌려준다. 그리고 송악산에는 쓰레기 버릴곳이 마땅치가 않다. 결국 나는 산을 등정하는 내내 스벅 리유저블 컵을 들고 있어야 했다. 커피가 필요하다면 매장에서 다 마시고 출발하는것을 강력하게 권장한다...
사진에 보면 왼쪽에 뜬금없이 툭 튀어나와있는게 신방산이고, 오른쪽에 보이는게 한라산인데 이 날도 날씨가 워낙 좋아서 가시거리가 미친 수준이었다.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다. 산을 오르면서 특이한것들을 좀 봤는데, 마라도로 가는 배가 송악산에서 출발한다는것과, 일본군이 송악산도 진지로 사용하려고 굴을 파놓은 흔적들이 있다는 것 이었다. 당시 일본군들은 굴을 왜이렇게 파는건지 알 수가 없다.




송악산은 등산 코스가 따로 있는데, 굳이 오를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은데 산 위에서 본 경관이 막 엄청나진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에 둘레길 마냥 섬의 둘레를 따라 걷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송악산의 경치는 절경이었다. 높은 곳에서 가파도, 마라도도 보이고 때로는 산이었다가 절벽이 나타났다가, 평야가 나타나는가 하변 해변가도 나타나서 쉬지 않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안가에 떠밀려와 쌓여있는 쓰레기는 좀 씁쓸했다)
신세경 씨가 왜 송악산을 그렇게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유튜브에서의 표현처럼, 내게도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적당하고 쉽게 오를 수 있는 이런걸 동산이라고 하는거지 전에 파트원 사람들은 무슨 청계산을 동산이라고 하며 날 속였던게 기억났다. 정말 괘씸하다
신방산 탄산온천

그다음 목적지는 신방산 탄산온천이다. 송악산 근처를 조사하다가 알게 된 곳인데, 제주도에 글쎄 온천이 있다고 하질 않는가. 마침 여행 가는 시기도 겨울이고, 송악산을 타고 내려와서 쌓인 흙먼지를 온천에서 씻고 나가면 참 좋겠다 싶어서 다음 행선지를 탄산온천으로 정했다. 이때 제주 버스 시스템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미 도민들은 익히 알고 있더라. 이건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결국은 또 택시를 탔다. 여행 타이틀이 뚜벅이인데 좀 부끄러운건 사실이다.

탄산온천은 진짜 물에 탄산이 있어서 탄산온천이라고 한다. 사이다처럼 몸에 기포가 생기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전혀 그렇진 않고,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주변에 기포가 생기는 정도의 탄산이다. 가족단위의 방문이 많기 때문에 노천탕이 운영 중인데 수영복을 별도로 입고 입장해야 하므로, 나는 실내 목욕만 이용했다. 찜질방을 할까말까 잠깐 고민했다. 옵션이 꽤 많이 때문에 미리 알아보고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물에 철분이 많은지 피 냄새처럼 좀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는데 씻고 나오니 참 개운했다. 탕은 미온수, 온수, 고온, 냉탕 그리고 차가움에 근접한 미지근한 탕 약탕 두개로 운영된다. 다들 뜨거운 건 싫은데 약효는 받고 싶은지 약탕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목욕을 끝내고 바나나우유 하나 때려주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신백정

여기는 아예 계획이 없던 식당이었다. 나는 조각공원에 가야했는데 조각공원앞은 식당이 없다 못해 거의 폐허수준이다. 시간이 좀 뜨기도 했고, 시간도 때울겸 남는 시간을 식사로 채우고 싶었는데 국밥은 10분컷을 낼게 뻔했고 그래서 그냥 배에 한번 기름칠도 할겸 소고기집인 식백정에 전화를 하고 방문했다. 한우 코스였는데 더 윗단계의 코스엔 해산물이 나오기때문에 그 전날에 전화를 해야 준비가 된다고 한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비추천한다. 11만원 냈는데 안구워준다. 서울만 구워주는걸수도 있다. 근데 이미 내 기준은 그런데 어뜩하겠나. 부위도 다양하게 주는게 아니고, 어느 부위 좋아하냐 그러길래 내가 소의 뭐.. 부위를 잘 아나... 평소 먹는건 안창살이다 하니까 안창살만 썰어주셨는데 리뷰보니 별 말 안하면 새우살도 주고 다양하게 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안창살만 줄걸 알았으면 말 안했지... 특수부위 코스라더니.. 안창살도 특수부위라고 하면 할 말이 없으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하지만 내게 있어 문제는 육회였다. 리뷰를 보니 육회에 만족했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서 역시 강하게 얘기는 못하겠지만.. 육회에 참기름같은걸 너무 많이 쓴 것 같다. 고기의 맛보다 생고기를 고기에 절여먹는 느낌이었다. 좀 아쉬웠다. 반찬의 퀄리티가 매우 좋았는데 (고구마에서 와사비같은 향이 나는 반찬이 있었는데 진짜 이건 개 쩔었다. 여태 먹어본적이 없는 고구마 맛) 육회에서 너무 실망해버려서 먹는 내내 다음 메뉴에 대한 기대를 하지 못하게 됐다.

이후로 육사시미와 고기가 나왔고 이후엔 된장찌개에 밥이 나온다. 밥은 안먹고 그냥 갈려했는데 후식이 나온대서 한참 기다렸는데 후식이 된장찌개랑 밥이었다... 찌개안에 소면이 좀 있길래 건져먹고 계산하고 나왔다. 보통 후식은 과일 이런걸 말하지 않나? 식사라고 했으면 안 기다리고 나갔을텐데.. 아무튼 아쉬움이 많이 남는 가게였다.
루나폴

신백정에서 계산할때 여긴 어떻게 오셨녜서 루나폴에 가기전에 들렀다하니 거기 참 잘되있다고 말해서 기대감이 상승했다. 입구부터 범상치가 않다. 그리고 바로 입장을 안시켜주고 사람들이 모여 무리지어질때까지 기다리게 하기에 도대체 안에 뭐가 있길래? 하는 기대감이 막 부풀었다. 루나폴은 동선상에 있는곳이어서, 온천에 갔다가 바로 돌아오지말고 들렀다 오자 싶어 넣은 깍두기였지만 일정에 있어서 가장 만족한곳이다. (애초에 밤에만 개장하는 특이한 곳이어서 더 좋았다)

입장하면 알바가 와서 루나! 이러면서 인솔해가는데 와 진짜 극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았으면 좀 치욕스러웠을 것 같다. 월급을 많이 받겠지? 하는 생각했다... 인스타에 이벤트를 많이 하는 곳이라는데, 입장해서 알바분에게 누나 스마스!라고 소리치면 사탕을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루나 스마스! 하는데 루나 스마스! 꺆! 하면서 선물을 주는 알바분을 보면서 정말 찐 리얼 극한 직업이라고 한 번 더 생각했다..


도대체 이 큰걸 뭐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은데 달 표면도 잘 보면 그림이 그려져있다

좀 변태적인 집착에 가까운 퀄리티가... 있는 곳이다. 컨셉은 많은 이들의 소원이 달에 닿아, 달이 소원을 들어주러 지구에 추락했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4~5개의 장으로 각각 다른 색의 조명과 컨셉으로 숲이 꾸며져있다. 단순히 보는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황금볼 같은 아이템을 지정 위치에 두면 발동(?) 되는 것도 있어 흥미를 더해주었다.



내 비루한 폰과 썩은 야간 촬영 실력으로 인해 더 많이 담아내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하지만 내 눈과 가슴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새겼다고 생각한다.
루나폴에 대해서 조금 더 적어보자면, 숲의 길도 흙길이라 걸을 때마다 들리는 흙길의 소리가 내내 함께 하고, 숲의 차가운 기운과 더불어 어두울새 없는 오색 조명과 계속 울려 퍼지는 소리가 너무 좋았다. 막연히 걷는 게 아닌 나름의 기승전결이 있는 구성도 좋았고... 누군가는 이상한 콘셉트와 번쩍거리는 게 웃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꼴에 공간을 빌려 전시하는 걸 도우면서 이런 예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들은게 있어서 그런가 굉장히 색다르게 다가왔다.
어두운 숲의 특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진짜 별들이 보이는 것도 좋았고, 인정하기 싫지만 연인끼리 가면 두 배는 더 재밌겠다 싶었다. 어둡고 음산하기 때문에 아주 앞이고 뒤에 착 달라붙어 걷던데 정말 재수가.... 하.... 여기까지만 한다...
돌아와서는 크롬 캐스트로 고려 거란 전쟁 하이라이트를 시청하다 잠들었다. 이번에는 강감찬으로 환생하신 최수종 씨 정말 리스펙트 한다. 너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