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
이중섭 미술관에 가보기로 했다. 내 숙소는 이중섭거리와 아주 가까워서, 처음 숙소를 보았을때 가장 마지막으로 이 거리를 구경하자 생각했다. 가장 가깝기때문에 가장 늦은날에 구경한다는 그런 계획이었다.
중섭이네

금강산도 식후경, 이중섭거리 구경도 식후경. 중섭이네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고등어 정식과 한치물회를 주문했다.
밥은 그냥 밥이 나오는게 아니라 비빔밥으로 나와서 독특하다 생각했지만, 가게 이름만큼 독특하진 않았다. 이중섭화가의 친인척분이 운영하는 가게인가? 어떻게 상호를 중섭이네로 쓸수있지?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밥은 그냥 그랬다. 고등어는 처음봤을때 와 정말 때깔이 좋다! 생각했는데 미영이네에서 경험했던 구이에 비해서는 뭔가 퍽퍽하고...좀 그냥 그런느낌? 나쁘진않았는데 워낙 맛있는걸 먹었어서 그런가보다. 물회엔 밥도 하나 시켜서 야무지게 말아먹었다.
이중섭 생가/이중섭 미술관


미술관 가는길에 이중섭 생가가 있다. 뭐랄까... 할머니댁 같은 느낌이다. 벽지부터 집의 나무 기둥, 아궁이까지 내가 어렸을때 경험한 할머니집과 많이 닮아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이런곳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집에서 지내봤다는 경험이 있는 내가 재밌게 느껴졌다. 도심의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은 이런 집을 이렇게만 접해봤을텐데 나는 이런집에서 할머니와 지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중섭화가도 그때 그 시절의 서민 중 한명이었던거라 생각하니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중섭생가를 구경하고 미술관에 갔다. 가는길부터 화가가 그렸던 그림들로 꾸며져 있었다

화가는 바닷가에 영향을 참 많이 받았던 것 같고, 그림도 참 개성이 있었다. 괜히 서귀포에서 이중섭화가를 기리는게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그 황소그림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좀 알아보니 황소 그림은 이건희 컬렉션에 있다고 한다. 황소 없는 이중섭 박물관이라...
홍철없는 홍철팀 같은 느낌...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미술관 크기에 비해 작품도 많이 없어서, 2층엔 화가가 알고 지냈던 동료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조가비 박물관



다음으로 조가비 박물관에 방문했다. 서귀포 예술의전당에 가는길에 있어서 저기도 한번 꼭 들러봐야지 했던 곳인데, 마지막날에 방문하게 되었다. 세계의 예쁜조개를 만들어 전시하는곳이라 생각했는데 조개들을 이용한 창작물도 전시되어 있었다. 관장님이 갔을때도 작업을 하고 계시던데 조개에 진심인 사람이구나 싶었다. 예술에 미치다보니 전시도 하면서 작업도 계속하는... 성덕아닐까. 예쁘장한 조개가 진짜 많았고 장인정신도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날씨가 너무 좋았다. 역대 최고의 날씨였다. 먼 거리의 한라산이 또렷히 보이는 미친 날씨였다.
나태주 작가 전시 (서귀포 예술의 전당)

그다음으론 바로 근처의 예술의전당에 가서 나태주 작가의 전시를 구경했다. 음...... 나는 예술은 정말 모르겠구나. 사진으론 마냥 시커멓게만 나오는데 가까이서 보면 별처럼 색이 칠해져있다. 우주를 뜻하는 것 같은데.. 거친 질감이 인상적이었다.
새섬



다음으로, 천천히 걸어 새섬에 방문했다. 새섬은 친구가 추천해준 곳 이었는데, 갈때마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다리를 건너지 못했다. 오늘은 바람도 잔잔하기도 했고, 마지막날이니 바람이 심해도 넘어가보자고 결의를 다졌다. 번번히 실패했지만, 결국 야간에 방문하게 된것이 전화위복인 것 같다. 야간에 오길 진짜 잘했단 생각. 아무리 생각해도 낮보다 야간이 더 멋있었을것 같다. 조명이 은은하니 아주 잘 꾸며져있다.

새섬에서 보는 항구도 색다른 느낌이다. 새섬은 접근성도 좋으니, 꼭 한번 야간에 걸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바 머스크(Bar Musk)
새섬에서 나와 저녁을 대강 먹었다. 걷느라 시간허비가 되기도 했고, 저녁을 헤비하게 먹거나 찾아보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마지막 날의 밤인데도 불구하고 저녁을 편의점에서 대강 사다 먹었다. 그러고 있자니 너무 마지막날의 밤이 아까웠다. 그래서 마음속에 아껴놨던 바에 방문하기로 했다.
숙소앞에 바가 여럿있다는건 진작 알고있었다. 하지만 쫄보인 나는 혼자 쉽게 들어가지 못했고, 생각만 하다 마지막 날의 밤까지 오게 된 것이다. 마지막날의 밤 기억이 편의점 도시락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별로일 것 같아서 제주의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꾸미고자 용기를 내어 바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단 골때리는 점이 있다. 나는 못봤는데, 시가가 있었다. 내부에서 흡연이 된다. 시가를 아예 직접 팔아서 잘라서 불도 붙여준다. 일반 연초, 전담, 다 된다. 재밌는 곳이다. 나는 첫잔을 맨해튼으로 시작하고 술을 계속 골랐다.

바텐더분과 말씀을 나누는데 히비키가 있다는 말에 얼른 주문해서 한잔했다. 리셀가가 너무 심하게 높아 마시지 못하고 있었는데 있다고 해서 매우 기뻤다. 정량을 주시고, 술이 애매하게 남아서 모두 나에게 따라주셨다. 아주 운이 기가 막혔다. 엄청 부드럽고 잘 넘어가서 사람들이 왜 이 술을 그렇게 찾는지 알 것 같았다. 진짜 맛있었다. 누구 일본에 안가나?

사장님과 말씀을 나누는데 이번에 제주 감귤 소비 촉진을 위한 대회에 칵테일 부문에서 1등을 했다고 하셨다. 따로 메뉴엔 없다고 하셨는데, 내가 그 술을 한잔 먹어볼 수 있겠냐고 하니 흔쾌히 만들어주셨다. 감귤쥬스가 반드시 들어가야되는 칵테일이다보니 독한 칵테일은 아닌데, 귤맛만 나는게 아니라 뒷맛으로 향하는 길에 신맛, 단맛이 오묘하게 섞여 나는게 참 맛있었다. (옆에 귤도 음료에 포함되는 패키지임)

그외에 시그니쳐 칵테일을 여러 종류 판매하시는데, 그 중 하나인 이중섭의 황소라는 술이다. 화가가 생전에 가난하여 바닷가에서 게를 많이 잡아먹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게가 장식으로 있고, 황소의 등은 게거품으로 꾸며져있다. 맛은 쥬스맛이다.

주정뱅이 마냥 많은 술을 마셨다. 옆자리에 앉은 도민분에게 말을 건내서 재밌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제주시에 넘어가면 반드시 서브웨이를 먹는다고 한다 (음식이 신선한 느낌이 든다..는데) 그리고 내일 돌아가야된다고 하니, 제주 두루치기를 먹어봤냐며, 용이식당을 추천해줬다. 진작 바에 왔으면 이런식으로 추천을 많이 받았을텐데 아쉬운 느낌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파산했겠지...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는 김창수 위스키도 한잔 마셔보았다. 이것도 애매하게 남아서, 히비키처럼 정량 이상을 주셨다. 술을 마시니 매운느낌이 들어 이 느낌을 스파이시하다고 말하는게 맞냐니 맞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위스키 강국이 되는걸까? 이 술은 문자그대로 없어서 못팔기때문에 리셀가가 말도 안된다고 한다.
워낙 많이 마셔서 그런가? 돌아가겠다고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니까 사장님이 직접 문까지 나와서 문을 열어주셔서 황송한 대접을 받는 느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고도수의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밤새 구토에 시달리게 되고 마는데....